독서모임에서 박완서 작가의 책을 골라 읽어오기로 했다. 국내 작가 중 가장 애정하는 분이 박완서 작가다 보니 얼마나 설렘이 둥실했나 모른다. 그래서 안 읽어본 작품 중에 집어 든 게 바로 이었다. 그리고 독서 내내 얼마나 힘겨웠는지 모른다. 잊고 있던 70년대 말 가부장제의 망령 때문이었다.책의 내용은 대학교수인 남편 인철과 자녀 셋을 둔 청희의 이야기다. 청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살뜰히 모시고 미장원과 미용학원 운영도 실력 있게 해낸다. 문제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우월하게 느껴지는 청희를
‘혜지’라는 사람의 이름이 게임에서는 욕으로 통한다는 건 소설 을 읽었을 때 알았다. 당시 충격이 꽤 커서 검색도 해봤는데 실제로 그 이름이 게임판에서 욕으로 쓰이고 있었다. 어째서 누군가의 이름이 타인을 그것도 여성을 딱 집어 멸시하는 단어가 됐을까. 그때 이런저런 검색을 하며 알게 된 책이 게이머 딜루트가 쓴 였다. ‘혜지’라는 단어 하나에 속이 벌렁거릴 정도였으니 게임판에서 흉흉하게 벌어지는 성차별은 얼마나 심할까. 궁금한 마음에 열어본
종종 ‘과거에 존재했더라면’이라고 상상해본 적 있다. 근대기의 나, 조선시대의 나, 삼국시대의 나, 국가라는 형태가 없던 과거의 나. 끝없이 타고 들어가는 상상 속에서 두려움을 꽤 느꼈다. 전쟁과 약탈이 빈번했던 시기에 여성의 입지는 말할 것도 없이 참혹했다. 현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종종 들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일 안 당해서 다행”이었다. 현대의 여성이라 지금 이 정도를 지켜내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무력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런 안도와 역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한다.”라는 말은 여성을 유난히 밝히는 남성에게 핀잔주는 소리 중 하나였다. 그 말은 몹시 경박하다. 그런 말을 듣는 사람 역시 경박할 것이다. 여자라면 가릴 것 없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어쩐지 치마가 더럽혀진 기분도 든다. 여자들 사이에 “바지만 입으면 다 좋아한다.”라는 우스개는 없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한때는 ‘여성=치마’와 같은 공식을 벗어나고 싶어 한 적도 있다. 여성스럽다는 말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저 지혜로운 사람 정도가 되고 싶었다. 원피스나 치마를 입고 나간 자리에서 “여자여자하네요.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프게 된 데에 아쉬움은 없다. 정확히는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신체 기관은 소모품과 다를 바 없어서 관리를 잘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관리가 소홀해지면 수명이 짧아진다. 그뿐이다. 오히려 서글퍼지는 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위축이 되는 순간 아닐까? 흔히 말하듯 ‘아픈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아프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면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보호받아야 마땅하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아플 시간을 주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당연하다시피 건강을 기대한다. 우리 사회는 젊
얼마 전 행사가 있어 인사동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전철을 탔을 텐데 그날 비가 굵직하게 내리는 바람에 남편과 차로 이동 중이었다. 경희궁 인근을 지나 경복궁 앞으로 향할 무렵 차가 심하게 막혔다. 비가 오고 주말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20분 넘게 고작 100m를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저 멀리 흔들리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그게 어떤 단체의 깃발이라는 사실과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음을 그제서야 확신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주말 경복궁역과 안국역 일대에서는 늘상 집회가 벌어졌다
페미니즘 도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전쟁과 관련된 도서를 접할 때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지 없는 글자만으로도 그 폭력성이 거대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숨을 고르고 잠시 창문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그러면서도 책을 못 놓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불편한 책은 읽지 않으면 된다.”라고 원치 않는 대안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은 이미 알고 있다. 불편하고 숨 막히는 폭력의 현재진행형을 외면하는 건 가해자를 용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가해자들을 용인하지 않기 위
지난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6, 7, 8월에 이어 요즘은 9월까지 길게 지난하다. 온화했던 우리나라 날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습해진 건지, 게다가 여름은 왜 이토록 길어진 건지 그 이유는 알 듯 모를 듯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지난함이다. 여름철 월경은 미치도록 괴롭기 때문이다.인구의 절반인 수십억 여성이 하는 생리. 인생에서 대략 40년 정도, 약 400번의 주기를 맞이하며 생식기로 피를 흘린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며 파생되는 여러 반응이 있다. 숱하게 찾아오는 월경통, 하루에 열 번쯤 화장실에 들러 처리해야 할 잡무들, 그리고
매년 벌어지는 헤프닝 중 퀴어축제가 빠지지 않는다. 올해는 6월에 대구퀴어축제가 열렸다. 그 무렵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대구와 그 지역을 방문한 성소수자를 향한 비아냥이 쏟아졌다. 언론이라고 조용할 리 없다. 보기 흉한 대립각의 사진이 뉴스 화면을 메웠다.늘 그래왔듯 나는 퀴어축제에 찬성한다.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설득했다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런 적이 없다. 성소수자의 취향이 반드시 이성애자의 납득과 허락을 받을 이유는 없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많은 소수자, 차별의 당사자들이 ‘축제’라는 이름
팬데믹 시기를 보내는 동안 절반 이상 줄었던 외부 취재의뢰가 꽤 밀려들고 있다. 이제는 마스크 없이 작은 병원도 드나드는 마당에 거리낄 건 없었다. 이번에 들어온 의뢰 중 가장 멀리 가는 취재가 창원이었다. 총 10회의 인터뷰를 3일에 걸쳐 진행하는데 창원에 3일간 머무르며 할 수도 있고 아침 일찍 나와 밤에 돌아오며 진행할 수도 있었다. 취재 일정을 조율하는 동안 남편과는 귀가 일정을 논의했다. 우리는 반려견 모카를 키우고 있는데 모카가 혼자 너무 긴 시간을 보내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먼 지방에 갈 땐
과거 없이 완성되는 사람은 없다. 어떤 면을 가졌든 사람에겐 과거라는 게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중에는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다.내 경우 가정폭력이 만연했던 성장기를 지우고 싶고, 치기 어린 마음에 날 선 말을 내뱉던 시절을 지우고 싶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처럼 생각하는 바를 또박또박 말할 수 있었다면, 이유 없는 매를 맞을 때 나를 보호해줄 조력자가 있었다면, 자신을 방어한다는 과한 마음을 언어로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어쩌면 더 행복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강화길의 소설 에 등장
언제부턴가 ‘뮤즈’라는 단어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이지만, 동음이의어로써 뮤즈는 작가,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런데 뮤즈는 작가와 화가에게 영감을 준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걸까? 영감은 무형의 어떤 영향력, 자극 등을 말하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달랑 사진 한 장만 소지해도 뮤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화가에게 뮤즈란 연인이자 성적 파트너이자 조수였고 쓰임이 끝나면 헤어지거나 생명을 다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현시대의 우리에게 전쟁은 가끔 농담처럼 건네지곤 한다. 분단국가로 사는 데 적응해서일까? 우리 바다 쪽으로 미사일을 쐈다는 소식에 겁을 먹기보다는 전쟁 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농담을 주고받는다. 북측의 우스꽝스러운 발표가 들려오면 코웃음 치며 한 귀로 흘려버린다. 한국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진심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그건 우리가 전쟁을 미디어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TV 속에서, 학교의 배움에서, 책 속에서 접한 전쟁은 우리 앞에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를 읽으며 열심히
고전 의 줄거리는 아주 유명하다. 간음을 저지른 여성이 가슴에 'A(Adultery)'라는 주황색 글씨를 새기고 다니며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훗날 주인공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달라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러한 주홍글씨는 현대에도 남아 있다. 이혼한 사람들에게 흔히 ‘꼬리표’라 칭하며 흠집 있는 사람인 듯 결점을 찾으려 한다.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이들은 수년 수십 년 발목을 잡히고, 혹여나 안 좋은 이미지가 씌워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멀리 볼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유명 정치인
2년 전 이사를 오며 처음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다. 이전까지는 직접 설거지를 했고, 설거지 담당이 남편이었던 터라 나는 아침 식사를 했던 접시와 컵 몇 개를 씻는 게 전부였다. 당연히 식기세척기의 세계를 모르던 상태였다. 이사를 앞두고 남편은 식기세척기를 사자고 졸랐다. 설거지 담당자의 당연한 요청이었으려나. 그런 이유로 식기세척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역 커뮤니티와 포털 등을 검색하며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많이 쓰는지 알아보는데, 신기하게도 입을 맞춘 것처럼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모두 식기세척기를 ‘이모님’이라 불렀다, 식세기 이모
가부장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체질이다 보니 가녀장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자 호기심 반 거부감 반이 들었다. 어떤 가정이든 반드시 ‘가장’이 필요한 걸까. 가장이란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오랜 세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온 집안에서는 나이 많은 남성이 가장을 맡아왔다. 자칫 가장은 경제활동으로 가족 구성원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경제활동을 맡는다 해서 가장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그러니 한국에서 가장은 자연스레 가부장의 문화였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해야 할 집단인 가
약속을 잡느라 식당과 카페를 고를 때, 여행지에서 방문할 장소를 살펴볼 때 중요한 기준 중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 실외가 아닌 매장 내에 있는 게 가장 좋고, 건물 안 화장실이라면 비밀번호가 걸려있거나 건물에 경비가 상주하는 곳을 골라야 한다. 피해야 할 환경은 매장이나 건물에 화장실이 없어 조금 떨어진 공중화장실이나 남녀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맛집이라 해도 노포나 노점, 포장마차 등은 이용이 어렵다. 그런데 사실 이런 까다로움으로 고른 장소와 화장실이라 해도 100%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밀양이라는 지명을 떠올리면 송전탑부터 떠오른다. 누구는 유명한 영남루를 떠올릴 테고, 누구는 끔찍한 성범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출장으로 딱 한 번 가봤던 밀양에서 나는 너른 풍경을 잠시 둘러보고 용건을 해결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송전탑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어느 풍경을 둘러봐도 송전탑만 떠올랐던 까닭이다. 뉴스에서 봤던 곳이 저기였나, 길쭉한 생선 가시처럼 생긴 송전탑이 내 눈에 걸려들까, 밀양에 머물렀던 하루 동안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감돌았다.밀양 송전탑 사건이 벌어졌던 때로부터 어느덧 10여 년이 넘게 흘렀다. 부지 선정은
를 읽고 리뷰한 적이 있는데, 어쩐지 그 책과 비슷한 표지가 보였다. 한 장씩 들춰보니 역시 예상대로 의 후속작인 이다. 새벽의 방문자들이라. 새벽에 방문하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한낮도 초저녁도, 쨍한 아침도 아닌 새벽에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불편하고 조금 켕기는 사람 아니려나. 새벽이란 깊이 잠들거나 혹은 너무 은밀해서 작은 들썩거림도 귀에 잡히는 고요한 시간이다. 그런 시간의 방문자라면 도무지 반가워하기 어려울 듯하다.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도무지 반갑지
시간이 갈수록 나와 남편은 제도에 환멸을 느낀다. 똑같이 일하며 살고 있음에도 무자녀 가정은 유자녀 가정에 비해 제도의 혜택이 없다는 사실, 재난과 재해 앞에 서로 의무를 미루며 고성만 오고 가는 사람들, 야금야금 난방비를 올려놓고 우는 아이 달래는 식으로 일부 계층에 주는 지원금, 인간이 자웅동체도 아니건만 육아휴직을 엄마와 아빠 둘 다 사용하는 데 겪는 어려움. 나열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부실한 제도가 싫어진다.비출산을 선택한 나와 남편은 어느 하나 제도의 혜택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마치 맡겨둔 돈을 가져가듯 매년 세금만